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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첫 국산차, 포니 스토리

[퍼스트경제=최현지 기자] "대한민국 국산차 1호 '포니'" 

대한민국이 자동차를 조립 생산하게 된 건 1960년대 초반부터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함께 자동차공업보호법이 시행되면서 해외 선진 업체와 제휴를 맺고 부품을 공수 받아 자동차를 생산하게 된다.

 

그 시절 조립 생산은 국내 자동차 산업에 새로운 전기를 열었으나 외국 기술에 비하면 한참 부족했다. 당시 독일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최고 시속 200km를 넘는 스포츠카들이 도로를 달리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정주영 선대회장은 1940년부터 정비소를 운영하며 자동차의 구조와 기계적인 원리를 터득했다. 그는 독립을 맞이한 이후 현대자동차그룹의 뿌리인 현대자동차공업사를 설립했다.

 

현대자동차는 당시 우리나라의 시대적 필요와 정주영 선대회장의 비전이 맞물린 자리에 뿌리를 내렸다. 경제 발전에 맞춰 중장거리 운송량이 늘어나면서 철도 수송에 한계가 생기자 정부는 2차 경제개발 계획을 추진해 고속도록 건설을 적극 추진했다. 현대자동차공업사에서 축적된 자본으로 설립된 현대건설은 국내 도로 확충의 상당 부분을 맡아 진행했는데, 이때 정주영 선대회장은 자동차 수요가 늘어날 것을 예상했다.

 

한 나라의 국토를 인체에 비유하며 도로는 혈관과 같고 자동차는 그 혈관 속을 흐르는 피와 같다는 생각을 했던 정주영 선대회장은 자동차 회사 포드(FORD)가 한국 진출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빠르게 움직였다. 경제 발전에 대한 비전은 물론 정비소 운영으로 자동차 지식에 해박한 정 선대회장과 포드와의 제휴 협상이 빠르게 이뤄져서 1967년 12월 현대자동차가 설립된 것이다.

 

이듬해 현대자동차는 울산에 조립공장을 짓고 영국 포드의 코티나(Cortina) 2세대 모델을 들여와 생산하기 시작했다. 당시 기술력으로 설립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자동차 회사가 공장을 짓고 조립 생산을 시작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현대 코티나’는 경쟁 모델인 ‘신진 코로나(도요타와 기술 제휴를 해 생산한 차량)’보다 큰 차체와 넉넉한 출력으로 이목을 끌었지만, 곧 생각지 못한 문제에 부딪힌다. 다른 택시에 비해 코티나 택시 차량이 자주 고장이 난다는 것이었다. 승용차의 대부분이 영업용 차량으로 운영되던 시절인 만큼 큰 문제였다.

 

그런데 포드가 파견한 조사단은 난감한 결론을 내렸다. 고장 원인을 ‘차를 험하게 굴리기 때문’이라고 파악하고 ‘비포장도로에서 운행을 자제할 것’이라는 해결책을 내놓은 것이다. 코티나는 선진국의 도로 사정을 바탕으로 설계되었는데, 그때만 하더라도 우리나라 도로 포장율이 20%정도였으니 차가 멀쩡할 리 없었던 것이다.

 

비포장도로가 대부분인 나라에서 포드 조사단이 제시한 해결책은 ‘자동차를 운행하지 말라’라는 말과 같았다. 현대자동차는 포드에서 조립 모델을 들일 때마다 독자적으로 품질을 보강하며 현지화에 온 노력을 기울였지만, 자체 기술력 없이 외국 기업에 의존하는 조립 생산자의 한계를 느꼈다. 우리나라 땅에 맞는 자동차에 대한 바람은 점점 간절해졌다.

 

현대자동차는 단순한 조립을 넘어 독자 제조 단계에 진입해야 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제휴사인 포드와 새로운 합작사를 세우기로 합의했다. 주요 부품부터 자동차까지 국내에서 직접 생산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이 무렵에 포드의 생각이 바뀌는 사건이 생긴다.

 

범아시아 진출 계획을 세우고 있던 포드는 중국 진출을 위해 한국에서 철수한다는 도요타의 행보에 따라 현대자동차와의 합작사 계약 이행을 계속 미룬 것이다.

 

1971년, 자본금 납부가 늦어지는 데다 주요 부품을 국산화하기로 한 약속을 철회하려는 포드의 태도에 결국 합작사 설립 협상은 결렬되었다. 선진 업체가 제시하는 불리한 조건에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협상이 거듭 실패하자, 이에 지친 현대자동차가 독자적으로 대한민국 첫 대량 양산형 고유 모델을 개발하겠다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물론, 그 당시 국내 업체 입장에서는 선진 업체의 부품을 수입해 조립 생산한 자동차를 판매하는 것은 큰 투자 부담 없이 이윤을 내는 안정적인 사업 방안이었으나, 대한민국의 독자적인 모델을 갖고자 하는 현대자동차의 의지는 굳건했다.

 

1975년 마침내 현대자동차의 첫 독자 모델 ‘포니(PONY)’가 시장에 출시된다. 현대자동차 설립 후 10년이 되지 않은 때의 일이다. 포드와 합작사 협상이 결렬된 후 독자적인 생산까지, 포니 프로젝트는 수많은 반대와 우려 속에서 지난한 과정을 겪었다.

 

우리나라 기계 공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자동차 생산이 100% 국산화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정주영 선대회장의 각별한 노력과 빠르고 담대한 결단으로 ‘포니’가 탄생한다.

 

자동차 산업은 다양한 소재와 가공 기술이 접목된 종합 산업이다. 정주영 선대회장은 자동차가 우리나라 기계 산업을 이끌 것이라는 믿음을 놓지 않고 도전했다. 그가 전망한 대로 독자 모델 개발은 현대자동차가 글로벌 기업으로 발전한 계기이자, 대한민국이 산업 강국으로 우뚝 서는 디딤돌이 된 것이다.

 

현대자동차가 설립될 때만 해도 국내 자동차 등록 대수는 불과 6만대 남짓이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약 2,500만 대의 자동차가 등록되어 있다. 국민의 절반이 자동차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현대자동차는 자동차 제조사를 넘어 스마트 모빌리티 기업으로 변화하고 있다. 인류에게 자유롭고 혁신적인 이동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로보틱스, 도심 항공 모빌리티 등 미래 모빌리티 영역에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포니로 시작된 국가와 국민을 위한 도전 정신이 이제는 인류를 위한 진보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